본문 바로가기

썸머 이야기/초록색 지붕집으로 가는 길

초록색 지붕집으로 가는 길 // 아이스크림은 천상의 맛이었답니다!

 

 

 

 

 

 

 

 

 

 

 

 

 

 

 

 

 

 

 

 

 

 

 

 

 

 

 

 

 

 

 

 

 

 

 

 

 

 

 

 

 

 

전 아직 한 번도 아이스크림을
못 먹어 봤단 말이에요. 
다이애나가 어떤 맛인지 설명해 주려고 애썼는데,
상상만으로 아이스크림 맛을
알기는 힘든 것 같아요.

 

 

 

 

아이스크림은 말로 표현을 못 하겠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천상의 맛이었가는 건 확실해요.

 

 

 

 


 

 

 

 

 

 

 

 

 

 

 


 

 

 

 

빨강머리앤 소설 속에는 먹는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온다.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각종 과일들인데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주민들은 대부분 직업이 농부인 관계로 집 앞에 과수원을 하나씩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집에 열린 사과를 따가지고 다니며 간식으로 먹는다. 각종 과일을 넣어 만든 케이크나 청, 음료도 소설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밀가루와 설탕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였기에 케이크나 쿠키, 빵 종류도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먹기 귀한 음식들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가정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냉장고가 없다. 섬 한가운데 어디서 얼음을 구하기도 어렵다. 카모디의 상점에 가도 초콜릿이나 박하 사탕은 구할 수 있지만 아이스크림은 구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둘 뿐이다. 하나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주일학교 봄소풍에 참가하는 것이다. 통의 가장자리에 얼음을 채우고 우유를 넣고 열심히 돌리면 우유가 부드럽게 얼면서 아이스크림이 된다. 평송는 이 통도 구할 수 없고, 얼음을 구할 수도 없으므로 프린스 에드워드 섬 아이들에게 소풍은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이 된다.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샬롯 타운의 식당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다. 샬롯 타운에는 밤 11시에도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다. 이래나 저래나 아이스크림은 참 귀한 음식이다. 태어나 난생 처음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앤은 그 맛을 '천상의 맛'이라 표현한다.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는 이렇게 귀한 음식의 하나로 바나나가 등장한다. 아이에게 바나나를 먹이고 싶지만 결국 바나나맛 우유를 사주는 장면이 나온다. 정치인 나경원 씨가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하여 어른 시절의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다. 유치원 소풍에간 어린 시절의 나경원 씨가 바나나를 먹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패널들이 모두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시절에 바나나를!'하는 감탄이었다. 부유하게 자랐던 그녀 조차 바나나는 일 년에 딱 2번, 봄소풍과 가을 소풍에만 먹을 수 있었고, 그래서 저렇게 바나나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까지 남겨놓았다고 설명해주었다.

 

앤이 태어나서 첫 번째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은 나에게도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중 하나는 망고였다. 가까운 친척이 신혼여행으로 동남아를 다녀오면서 말린 망고를 사준 것 외에 망고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당시 남대분의 수입상가에서 열대과일을 팔았언 기억이 나고, 백화점 같이 고급 과일을 취급하는 곳에서는 생망고를 살 수 있긴 했을 거다. 하지만 설사 판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비싼 과일을 턱턱 사먹어볼 형편이 되지도 않았다. 2003년 가수 이효리 씨가 델몬트 음료 광고를 하면서 구아바나 망고와 같은 열대 과일 이름이 친숙해졌다. 이제는 냉동 망고 덕분에 빙수로 자주 만나볼 수는 있게 되었다.

 

어쨌든 망고는 나에게 있어 상상 속의 과일같은 존재였다. 어떤 맛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디서 사야하는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 대형마트가 새로 들어왔고, 감자나 애호박 같은 야채를 사기 위해 청과물 코너를 돌다가 망고를 발견하였다. 엄마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노란 망고를 딱 한 개 사가지고 왔다. 한 개도 결코 싸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고 엄마와 나 두 사람 뿐이었다. 또 다른 가족이 오기 전 두 사람이 먹어봐야했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고, 엄마는 비장하게 과도를 들었다. 한 번도 망고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잘라야하는지 알 수가 었었다. 사과나 참외를 잘랐던 것처럼 일단 엄마는 망고를 반으로 가르기로 했다. 가로로 반을 자르려 하였으나 칼은 조금 들어가다가 말았다. 망고는 잘리지 않았다. 씨에 걸린 것이다. 당황한 엄마는 다시 세로로 반을 가르려 하였다. 하지만 역시 칼은 조금 들어가다 말았다. 망고는 이내 만신창이가 되었다. 결국 엄마는 칼이 들어가는 지점까지 부분부분 망고의 과육을 떼어내었다. 씨 부분에는 섬유질이 많아 먹을 수가 없고, 도려낸 과일에서 껍질을 깎고 나니 한 사람이 한 두입씩 먹고 끝이 나버렸다. 아마도 저렴한 망고였기에 크기가 작아서였을테다. 그 이후로, 망고에 대한 신비감도 사라졌고 그저 값이 비싼데 먹을 것도 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시간이 한참 흘러 동남아로 여행을 다니면서 망고를 먹게 되었고, 망고 맛에 눈을 뜨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거주하는 동안은 애플 망고가 개 당 2천원 씩이었기 때문에 정말 자주 먹었다. 처음에는 호텔에서 먹었던대로 망고에 칼집을 내어 예쁘게 잘라 먹었다. 하지만 친하게 된 필리핀 출신 아기엄마를 통해 더 편하게 먹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깍뚝썰기를 하는 것이었다.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주면 아이와 남편이 서로 경쟁하듯이 흡입했는데 이 모습을 보는 것도 팍팍한 미국 생활에서 느낄 수 있었던 소소한 행복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으로 온 이후, 한 번도 망고를 아이에게 사주지 못했다. 얼른 코로나가 끝나면 가까운 동남아라도 가서 망고를 실컷 먹어보고 싶다. 맛있어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가족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